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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문장의소리] 허구적 인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소설가의 고민들 with 박하신 & 최수진 소설가 | 801화 2부](/attachFiles/board/0032/20250331224232973.jpg)
![[문장의소리] 시적인 것과 무관한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시가 될까? with 남현지 시인 | 801화 1부](/attachFiles/board/0032/20250320142032212.jpg)
![[문장의소리] 신춘 그날, 당선자들은 무얼 하고 있었나 with 남의현 & 홍성구 소설가 | 800화 2부](/attachFiles/board/0032/20250320141550892.jpg)
![[문장의소리] 새해 첫 날 신문에 내가 나온다면? with 안수현 & 박연 시인 | 800화 1부](/attachFiles/board/0032/20250306191936349.jpg)
문학집배원
세컨드핸드 조용우 시장에서 오래된 코트를 사 입었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다른 나라 말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누런 종이에 검고 반듯한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고 양파 다섯, 감자 작은 것으로, 밀가루, 오일(가장 싼 것), 달걀 한 판, 사과주스, 요 거트, 구름, 구름들 이라고 친구는 읽어 줬다 코트가 죽은 이의 것일지도 모른다며 모르는 사람의 옷은 꺼림칙하다고도 했다 먹고사는 일은 어디든 비슷하구나 하고 웃으며 구름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구름은 그냥 구름이라고 친구는 답했다 돌아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이 오래전에 사려고 했던 것들을 입으로 외워 가면서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따뜻한 코트를 버려두고 이 모든 것을 살뜰히 접어 여기 안쪽에 넣어 두고 왜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것일까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시장을 통과할 때 상점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하나씩 바구니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부엌 식탁에 앉아 시큼하기만 한 요거트를 맛있게 떠먹을 수도 있다 오늘 저녁식사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놀라운 것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면서 구름들 바깥에서 이곳을 무르게 둘러싸고서 매일 단지 다른 구름으로 떠오는 그러한 것들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지나쳐 걷는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오고 있다 - 시집 『세컨드핸드』(민음사, 2023)
나는 여느 때처럼 카페 바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 하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 사람은 내가 있는 바로 그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순간, 기억났다.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시를 썼다. 문구점에서 스프링이 달린 천원짜리 연습장을 사서, 거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적었다. 낙서 같기도, 시 같기도 한 문장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수학 시간마다 숨기지도 않고 시집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수학 선생님은 한번도 누구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순한 분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화나게 했다니. 하지만 수업 시간에까지 시집을 읽었던 건 시를 향한 나의 열정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내게 그것 외에는 흥미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국어 과목 숙제로 시를 써 가야 했다. 1학년 7반 담임이자 국어를 가르치던, 바짝 마른 몸에 단 한 번도 치마란 것을 입지 않았던 서른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그날 내가 숙제로 제출한 시를 나도 모르게 도 대회에 출품했다. 그 시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나는 상금으로 MP3 플레이어를 샀다. 그리고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는 동네 빵집에서 파는 7천 원짜리 롤케이크를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 걸까? 아무튼 그때 내가 쓴 시는 새벽 4시의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들에 관해 적었다. 그녀는 그때 나를 교무실로 불러 ‘너는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는 게 어떠니?’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저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 건데요’하고 대답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회한의 기미가 스쳤다. 나도 한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 그런 식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백일장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시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마흔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쟁반을 들고 잠시 카페 안을 둘러보더니, 내가 한쪽 끝에 앉아 았는 바 자리의 다른 한쪽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머그 컵에 담긴 음료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문득 내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녀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찻잔을 들고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가끔 내 생각을 했다고.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보고, 신간이 나오면 사서 읽었다고. 나는 두 달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요? 그녀는
단골 조해주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종로에 있고 근처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나는 단골이 되고 싶지 않아서 어떤 날은 안경을 쓰고 어떤 날은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어떤 날은 혼자 어떤 날은 둘이 어떤 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오는데 어떻게 차갑게, 맞지요? 주인은 어느 날 내게 말을 건다 커피를 받아들고 나는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저어서 드세요, 빨대의 끝이 좌우로 움직이고 덜컥 문이 잠기듯 컵 안에 든 얼음의 위치가 조금 어긋난다 주인은 내가 다니는 회사 맨 꼭대기 층에 지인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 김지현이라고 아나요? 나는 그런 이름이 너무 많다고 대답한다 그렇구나, 주인은 얼음을 깨물어 먹고 설탕처럼 쏟아지는 창밖의 불빛들 참, 내일은 어떻게 하면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일까 생각하면서 -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
수아는 그 나무를 알아보았다. 마을에서 보자면 대숲 가운데에 꺼멓게 머리를 내놓은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수아는 그들이 대숲 어디쯤에 와 있는지 가늠이 되었다. 바람 많이 타던 오른편 능선 중턱이었다. 할머니가 손전등을 왼편으로 돌렸을 때 재우리만한 빈터가 나타났다. 수아는 봉긋한 흙더미를 보았고 이내 그것이 묘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잔뜩 긴장해 있던 수아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풀 한오라기 없는 묘지는 무덤이라기보다 정말 흙무더기 같았다. 할머니는 묘지 앞에다가 짚을 깔고 음식을 차렸다. 숙모에게 종지를 건네 술을 따르게 해서는 무덤 이쪽저쪽에 나누어 뿌렸다. 절도 없는 성묘는 금세 끝나고 이내 셋은 돌아섰다. 수아는 숙모에게 누구 무덤이냐고 숨죽여 물었다. 숙모는 강씨 할아버지 묘라고 말해주었는데 수아는 그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기억에 없었다. 수아는 그 무덤의 내력을 집안 여자 어른들에게서 들었다. 여러 밤 제삿날의 부엌 담화를, 조각난 파편들을 꿰어 짐작하게 된 사연이었다. 증조할머니가 과부로 살다가 떠돌이 계절노동자를 만나 새살림을 차렸는데 그 할아버지는 성실하고 의붓자식들도 잘 돌보았다. 그가 혈육도 남기지 않고 늙어 죽자 의붓자식들이 장례를 치러줬다. 선산에는 못 가고 앞산에다가 묻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 묘지는 남부끄러운 묘지가 되었다. 그래서 문중에서 묘지 주변에 대나무를 심었다. 온 산이 대숲이 되는 데는 십년도 걸리지 않았다. 수아는 그 이야기가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대숲이 조성된 사연이 기묘하고, 할머니들의 야행은 아름다웠다. 묘지 가에 대나무를 심은 집안 남자들의 용렬한 행태보다도 여자들이 밤길로 다닌 성묘가 인간적으로 보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관습에 대한 저항으로도 여겨져 마음으로 아끼게 되었다. 그 성묘가 얼마나 더 지속되었는지는 모른다. 수아는 어른들이 음식을 해서 대숲에 드는 걸 그 뒤로 목격하지 못했다. 금이가 재혼하고 몇 해 있다가 큰집 부엌에 발을 들이게 되고, 수아는 마치 교대하듯이 부엌에서 물러났다. 어린 딸들까지 부엌에 넣는다고 금이가 싫어했다. 아마 성묘는 집안 할머니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 지속되지 않았을까? 큰어머니나 숙모들도 얼마간 성묘를 다녔을지 모른다. 이제 부엌의 여자 어른들이 대부분 세상을 등졌고 도회지로 나간 어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일전에 대밭 매매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강씨 할아버지의 묘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해서 금이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처음 듣는 소리처럼 반응했다. 그러면서 금이는 도둑 제사가 동티를 피하려는 이 집 여자들의 욕심이 한 짓거리라고 혀를 찼다. 남자들보다 더 악랄하다고, 금이는 차갑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수아는 놀랐다. 모든 제사라는 게 산 자들의 발원에서 비롯한 행위이기도 하므로 그 일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금이가 보인 적의가 전에 없던 거라 당혹스러웠다. 뒤미처 수아는 재취로 들어온 금이의 피해의식이라든가 섭섭한 마음 같은 걸 새삼 헤아려보게 되었다. 수아로서는
복어 가요 이자켓 합정까지 걸을까? 추운데 목도리 빌려줄게 너는? 난 추위 잘 안 타 추워서 머리가 멈췄나 봐 겨울이라 그런가 차디찬 골짜기인 거야 그곳에 도달한 생각들은 모두 얼어붙는 거지 그 골짜기 다 녹여주고 싶다 그럼 범람할 거야 아무 말이나 쏟아져 나올 거야 그건 안 돼 왜? 저거 들려? 뭐? 구세군 종소리 연말이긴 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뭐 해? 요즘 살쪘나 봐 패딩 탓인가 나 부해 보여? 조금 떨어진 채 빗물 언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한적한 합정에는 이 거리 끝에도 저 거리 끝에도 담배 태울 곳이 없어서 ‘그런지’라는 카페를 지나고 솔방울식당 지나고 푸르게 칠한 건물과 목련이 자라는 주택 지나 어둑한 골목에 들어섰다 불을 붙이고, 신발 뒤축으로 얼어버린 물웅덩이를 부수었다 얼음 조각이 이리저리 튀었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다 맥없이 나뒹굴었다 종소리가 한 번, 두 번 이편저편 맴돌았다 10번 출구가 보였다 목도리를 돌려받았다 조심히 가 너도······ 넌 뒤돌아보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매끄럽게 사라졌다 점점 작아지는 뒤통수를 보다 돌아섰다 코트 주머니에는 킹 크룰의 앨범이 들어 있었고 움켜쥔 목도리는 방어 태세의 복어만큼 부풀어 올랐다 - 시집 『거침없이 내성적인』(문학과지성사, 2023)
올빼미가 말하길. - 정어리를 먹어. 올빼미가 말했다. - 난 정어리에 대한 글을 쓸 작정이었다. 한 달 내내 정어리만 생각했지. 정어리, 정어리, 정어리, 매일 백 번씩 말했다. 아니, 이백 번은 말했겠군. 정어리통조림이나 정어리를 넣은 샌드위치를 생각하고, 정어리를 가공하는 공장과 정어리를 잡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정어리처럼 생긴 비쩍 마른 남자아이에 대해서도 생각했지. - 정어리를요. - 그래, 정어리다. 오로지 정어리였지. - 그래서 그건 어떤 이야기가 되었나요? 유쾌하고 흥이진진한 이야기? 건조하고 냉정한 이야기? - 못 썼다. - 왜요? - 난 정어리를 본 적이 없거든. 먹어본 적도 없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정어리, 라는 단어에 빠져 있었던 거겠지.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주나 왕자에 빠져드는 것처럼, 한 번도 보지 못한 마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는 하필 정어리에 빠졌던 거다. 정어리에 대해 매일 생각했지만 그건 진짜 정어리가 아니었지. 내가 상상해낸, 정어리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다. 그러니 내가 뭘 쓰더라도 그건 정어리에 대한 글이 아니게 되는 거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알마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저씨 때문인가요? - 남 탓을 하다니, 정말이지 촌스럽기 짝이 없군. - 역시 아저씨 때문이었군요. - 됐다. 다시 정어리얘기로 돌아가자. 아니 더럽게 재미없고 지루한 네 얘기로 돌아가지. 너는, 그런 거다. 넌 네가 죽어야 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말하지만 정작 네가 경험한 건 아주 짧은 단어 한 개,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장면 하나에 불과한 거다. 내가 정어리, 라는 단어를 읽고 그것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처럼 너도 어디선가 고통이나 죽음 같은 단어를 보고 거기 동화되기 시작했겠지. 나는 정어리라는 단어밖에 모른다. 정어리에 대한 책을 백 권쯤 쓴다 해도 거기 진짜 정어리는 없지. 너도 마찬가지다. 넌 아직 삶도 죽음도 논할 자격이 없지. 어떤 것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정어리를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내가 정어리가 비리다거나 기름지다거나 담백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너도 네 삶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을 거다. 넌 유 서를 쓰지 않은 이유가 네 엄마가 이유를 알지 못해 고통스럽길 바라서였다고 했지? 그건 거짓말이다. 너는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거다. 네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뭐가 널 그리 힘들에 만드는지 너도 몰랐을 테니까. 그냥 죽어버릴까, 하고 쉽게 결심한 거지. 어린애답게 말이다. - 아저씨도 내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 너는 그냥, 서툰 거겠지. 어린애들의 특권이다. 멍청하고 성급한 건. 어린애니까 가끔은 그런 식의 엉뚱하고 어리석은 결론을 내기도 하는 거다. 괜찮겠지, 그 정도는. 난 어설프고 서툰 것들이 싫지 않다. 그런 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채워지거든. - 숲에 떨어지는 동물들처럼요? - 그래, 멍청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 난 멍청하지 않아요.
글틴
무엇을 보았다면 나는 말하고 싶어져요내가 본 것,내가 맡은 것,내가 만진 것을내가 쓰는 말로 내뱉고선명한 형태로 모아다 꼭 안고 싶거든요무엇을 배웠다면나는 알리고 싶어져요내가 맛 본 것,내가 들은 것,내가 품은 것을내가 가진 가장 좋은 글로 써내고뚜렷한 선으로 끌어다 가까이 하고 싶거든요뒤섞기도 하고,숨기기도 하고,이리저리 다듬기도 해서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죄다 나타내고 싶어요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란,충동과도 같은 것이지요.
어쩌면 알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의 정적 속에서 나의 의식이 저절로 깨어나고, 다시 어둠으로 가라앉기까지 얼마나 긴 여정을 지나야 했는지를. 그건 중력을 잃은 감정이 서서히 암흑물질 속으로 스며드는 현상과도 같았다. 방향도, 무게도 없이 사라지는 어떤 흐름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해되지 않았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등을 감싼 움츠림 위에는 현실의 기압이 내려앉아 있었을지, 아니면 말없이 쌓인 기억들의 무게였을지. 그날 흘러나온 한숨은 초신성 폭발 직전의 별처럼 모든 것을 감춘 채 고요히 진동하고 있었다. 작고도 선명한 그 진동은 태양계의 궤도를 이탈하는 보이저호의 마지막 신호처럼 천천히 멀어지는 기척이었다. 그 뒤로는, 작별만이 머물고 있었다. 서로의 궤도는 시간의 끝까지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었었다. 만유인력을 거스르는 듯한 믿음 아래 함께 걸었다. 그날, 무중력의 공간 한편에서 희고 작은 꽃 하나가 조용히 피어났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조용히. 어느 순간, 특정한 진동이 이름을 불렀고 내부에 고요히 정지해 있던 공간은 흔들렸다. 성운의 빛이 수줍게 퍼지듯, 그 떨림은존재를 알려오는 한 점의 파동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서로를 둘러싼 중심값들은 서서히 달라졌다. 각자의 궤도로 밀려나는 행성들처럼 조용히 멀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떠오른 하나의 가능성— 우리가 정의했던 ‘연결’이라는 감정은 지워지는 빛을 보며 아직 남아 있다고 믿는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별은, 변해버린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멈춰 선 좌표에 다시는 도달할 수 없게 된 항로 때문이었다. 닿고자 했으나, 닿을 수 없었던 거리였다. 끝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이제야 감정은 초신성처럼 터지듯 피어나는 걸까. 그날 밤, 하루살이의 생처럼 짧은 궤도 속에서 사라질 듯했던 존재를 무언가가 가만히 껴안아 주었다.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우주의 어딘가, 빛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지점에 서로의흔적이 남은 별 하나쯤은 아직 떠 있을지도 모른다.
유년기에 피아노 연주를 배우는 건 흔한 일이다. 나는 동네에서 피아노를 제일 잘 치는 아이였고 적절한 시기에 전공을 권유받았다. 물론 잠깐 전공을 하다가 결과적으로는 음악과 거리가 먼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지만, 피아노를 제법 잘 치고 또 좋아했다는 이야기이다.나는 내가 훌륭한 연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연주보다는 교육으로 진로를 생각했다. 음악 교육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클래식 악곡을 연주하는 일은 기술인가, 예술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치열한 고뇌와 노력이 동반된 기술은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다른 질문이 생겼다. 클래식 악곡을 연주하는 것은 답습인가, 창작인가?모 피아니스트의 인터뷰를 보고 의문이 조금 해소되기는 했다. 그는 연주의 목표가 작곡가를 대신해 음악으로써 그의 작품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클래식 음악은 생각 외로 해석과 개성이 존중되는 분야이다. 다만 이미 존재하는 곡에 개개인의 해석을 더하는 것을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나?누군가의 작품을 잠시 빌려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말하는 것이 창작이라면, 그 '각자의 방식'에 연주자 자신을 얼마나 담았는지도 중요할 것이다. 현대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의 목표는 과거의 음악을 재현하려는 것만이 아니다. 사실 연주가 창작인지 그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행하는 것이 답습에 불과할지라도 단순히 과거를 반복하거나, 음악을 무의식의 영역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억은 참 알 수 없는맛을 가진 것 같아한 입 먹었을 때 슬픔한 입 먹었을 때 분노한 입 먹었을 때 그리고 기쁨추억을 전부 삼켰을 때맛은 뒤섞여서 난 쓴 표정을 짓고그 감당하지 못할 감정과 기억들은내 목과 가슴 그리고 눈을 조르지그 맛에 참 중독 되는거 같아뒤죽박죽 레시피이지만나에겐 가장 의미 있는 재료로 만들었고다른이에게 나눠줄 수 있지만나만이 제대로 음미 할 수 있는 요리이지그 요리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네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요리사는 추억 밖 너야
죽은 사람의 피에서는무슨 맛이 날까요 찌그러진 콜라캔처럼 그가 누워 있다몇 방울 김 빠진 채입가에 묻어 있다이젠 텅 비어버려바람만 불어도 저만치 굴러갈 것이다나는 그 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금세 굳기 전에정말 안 될까아무도 없죠 땡볕에 눅눅해진 머리통 옆에손가락을 살짝 대본다미동도 없는데 가슴은 털썩 식는다가져다만 대도 종이가 진득하게 얼룩지겠지손가락에 종이가 붙어 굳어버릴 거야살과 같이 뜯어지면 어떡하지나는 단풍을 그려서선선한 가을까지 그림을 익혀 두어야겠다나는 그 손가락으로 소시지를 굽고 싶어요실없이 부드러운 손가락긁히는 부스러미 하나 없고 엄지와 같이 펄친 검지손가락나머지는 머리에 짓눌렸고냉장고에 넣어둔 소시지처럼차갑고 축축하다맹한 냄새가 나손톱으로 찔러 볼까닿을 때까지 찌르면역시 피가 나올까요다 굳었을까요후라이팬에 소금 쳐 굽고 싶다손톱도 비늘처럼 쪼그라들어아작 아작 씹어 먹고자른 밑동을 노릇하게 갈색이 될 때까지구워 먹고 싶다햇볕에 익지도 않고 차가워요이렇게 더운데 차가워먹고 배탈이 나면 어쩌지글쎄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일지도 몰라파란 혈관을 둔 기계일지도그러니 먹어도 괜찮겠어무슨 맛이 날까싸구려라그리 좋은 맛은 안 나더라그는 사람이 아니다나는 사람입니다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그는 이제 사람이 아니에요나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나는 인간다운 대우을 원해요그는 이제 죽었고 말도 못해요피에서 무슨 맛이 나야 사람일까요죽은 사람의 피에서는무슨 맛이 나야 할까요이마를 샛노랗게 짓밟는싱거운 땀의 맛이눈이 따갑도록 자글자글 날 테다
내가 길을 나서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우연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들어섰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우연일랑 벗어던지고 와서목적지가 되었다.내가 마침내 그에게 도달했던 것처럼나의 재빠른 세상 속 누구 나의 미숙함이 되어다오.우리들은 모두 실수가 되고 싶다.단언만이 가득한 세상에유일하고 명료한 모순이 되고 싶다.엉망인 모습으로 사랑에 도착하고 싶다.헝클어진 머리카락 같은 마음을 보고 싶다.
너는 더 이상 없다.이 세상에도 없다.너는, 죽었다.중요치 않다.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바뀐 것은 없었다.바뀌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그렇다고이렇게 똑같길 바라지도 않았다.너의 애도들을 바라보면난 안다.넌 하나의 신기루가 되어나던, 그들이던, 너던너를 향해 아무리 달려가도오아시스는 모래늪이 되고우리는 개미지옥에 제발로 들어가는 개미가 된다는 것을뒤를 돌면그들이 나에게 손을 건넨다나는 그들의 손을 잡지 않는다그들은 이기적이다어떻게 시도 조차 하지 않지?어떻게 너를 찾지 않지?그 누구도 나만큼 너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나만큼 너를 추앙하지 않은 것이다!정말 멍청하다그들은 포기한다나를 잡기를그들은 답을 알고 있었다나는 너에게 달려가 너를 내 품에 쥔다까끌한 모래들이 내살을 파고들지만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다나는 너의 존재들을 더욱 세게 안는다나에게 상처를 입힐 때까지멈추지 않는다어쩌면 더 세게 안아야 할지도 모른다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날 덮친다오늘도 난 사막에서 눈을 뜬다.
문장소식
바로가기※ 2025년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추가공모 사업에 대한 공통 안내문입니다. 사전에 확인 후 세부 공고문 확인바랍니다.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문학)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1. 사업개요 ○ 사업명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사업기간 : 2025. 10월 중순 ~ 11월 중순 (1개월) ○ 사업장소 : 일본(Japan) - 교토(Kyoto) ○ 주요내용 : 오프닝 포럼, 클로징 이벤트 등 교토작가레지던시 개최 프로그램 참여 및 작가 개인 창작활동 수행 ※ 사업 세부소개 • 해외협력기관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홈페이지 : https://kyotowriters.org/ • 기관/사업소개 - 교토에 있는 대학의 문학 학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2022년에 설립된 국제 문학 레지던시 - 전 세계의 작가 및 번역가들이 교토에 머물며 창작활동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 • 세부 프로그램 - 레지던시 공식행사인 오프닝 포럼 및 클로징 이벤트 2회 ※ 모든 프로그램은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되며, 공개 행사에 한하여 영어-일본어 통역 진행 예정 2. 지원신청자격 ○ 문인(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최소 1권 이상의 발간 실적이 있는 문인 ※ 그림책, 희곡, 비문학(에세이 등) 제외 -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자 ○ 선정자는 레지던시 공식 행사 필석 3. 지원규모 및 항목 ○ 참가 예술가 직접 지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선정자 보조금 지급/지원신청서 내 예산 편성) 구분 선정 인원 지원규모 자부담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1인 (후보군 3~5인 내외) 100만원 내외 총 사업비(보조금+자부담)의 10% 이상 - 프로그램 참가를 위한 왕복 항공료(이코노미석 기준 실비 지원) ※ 비자 발급비, 현지 체재비 등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회계법인 회계검증수수료 ※ 회계검증수수료는 문예진흥기금 지원신청 공통안내사항 내 가이드라인 참조 ○ 기타 지원항목(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번역가/제작업체 지급) - 문학 분야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시 15편, 소설 30페이지 내외) : 400만 원 ※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해당업체, 번역가에게 직접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해외협력기관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 : ¥430,000 ※ 숙박비, 일부 식사, 공식 행사 관련 통역료(영어-일본어), 프로그램 운영 등 각종 비용 포함 ※ 현지 체류 중 지급되는 현지 체재비 외 추가분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해당 지원 내역은 해외협력기관과의 협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 4. 제출서류 및 자료 (필수자료 총 3개) ※ 우편 및 방문 접수 불가 제